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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격전 귀재 덩톄메이, 동북 곳곳서 日軍에 치명타
선양으로 압송되는 덩톄메이. 1934년 6월 4일 밤, 펑청역 플랫폼. [사진 김명호]1993년 봄, 중국은 민정법(民政法)을 개정했다. 도로나 마을 명칭에 인명 사용을 금지 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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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금성 쫓겨난 마지막 황제, 일본 환대에 “천황 만세”
일본 육군대학 시절의 푸제(앞줄 왼쪽 두번째)와 룬치(왼쪽 첫번째). 앞날을 예측이라도 한듯, 표정이 심란해 보인다. 1943년 4월 23일 도쿄. [사진 김명호] 푸이(溥儀·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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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] "일본놈만 때려잡으면 뭐든지"…항일에 모여든 청년들
1993년 봄, 중국은 민정법(民政法)을 개정했다. 도로나 마을 명칭에 인명 사용을 금지 시켰다. 랴오닝(遼寧)성 펑청(鳳城)도 시 중심을 관통하는 덩테메이(鄧鐵梅·등철매)로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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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백가쟁명:유주열]미완(未完)의 ‘암살’
최동훈 감독의 영화 ‘암살’이 화제다. 일제 강점 시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(조선사령관)에 대한 암살을 다룬 영화이다. 우리가 역사에서는 실제 경험해보지 못한 1930년대 경성(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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리샹란에 홀린 아마카스 “연기 못하는 가수 없어” 영입 지시
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〈753〉 젊은 시절, 리샹란은 나이에 비해 조숙했다. 나이가 들어서는 그 반대였다. 1940년 20세 때 만영 직원들과 베이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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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6·25 전쟁 60년]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(30) 한국 이해하려 힘쓴 밴플리트
현대그룹을 창설한 고(故)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내게 들려준 일화다. 그가 감격스러운 첫 방북을 마치고 난 뒤였다. 강원도 통천에 있는 고향을 다녀왔던 정 회장은 헤어졌던 누나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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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정치장교/입북전 김일성 「면접」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)
◎소의 선택과정/당시 88여단 대대장… 베리아 추천설도/김용범·최용건·김책·강건도 “지도자감” 주목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45년 8월하순 하바로프스크에 있던 25군정치장교 메크레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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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련군 한반도 진주과정.사진발굴 의미-日도없는 희귀자료
소련은 극동지역에서 별다른 어려움없이 일본 관동군을 격파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간주되고 있다.그러나 소련과 일본.미국의 전사(戰史)를 비교해 보면 소련이 고전했던 지역도 있었다.美蘇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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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면에서 계속|"전라도에 마음 열어 대구 자존심 지키자"
대구 동촌 국민학교에서 열린 대구동구연설회는 청중들이 질서를 지키며 끝까지 경청하는 등 조용한 가운데 진행. 첫 번째 단상에 오른 한겨레당의 권영식 후보는『5공화국의 비리와 부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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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640)반란의 진압
여순반란 당시 전라도지방에는 제5여단이 포진하고 있었다. 제5여단은 러시아군과 폴란드군에서 잔뼈가 굵은 김상겸대령이 수색에서 창설하여 광주로 이동해 있었다. 그 예하에는 반란부대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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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유중국 국방상
「국군의 날」 행사의 빈객으로 우리 나라에 온 자유중국 국방부장 인걸씨는 「국군의 날」 퍼레이드 중에 향토예비군의모습이 가장 미덥고 인상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. 대장으로 육군 참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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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84)창군전후(3)|이경석(제자는 필자)
나는 스마트라 섬에서 해방을 맞았다. 제25군이 주둔한 이 섬에서 철도부대에 소속해 있었다. 우리가 패전을 알리는 일본천황의 방송을 들은 것은 8월16일이었다. 제25군에서는 전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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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노재현의 시시각각] ‘입맛대로’ 친일 인명사전
‘시인 이한직(1921~76)의 부친은 일제 때 중추원참의·경북지사 등을 지낸 친일파였다. 1950년 이한직은 부산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김성수의 딸과 결혼식을 올렸다. 그러나 김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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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바이러스와 반세기 (42)
42. 일본의 세균전 실상 필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일본군의 세균전 부대는 731부대 뿐만이 아니었다. 1938년 창설된 북경의 1855부대, 39년 남경 1644부대, 39년 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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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칭·난징선 서울보다 닷새 빠른 8월 10일 승전 폭죽
◀ 1945년 8월 15일 오후, 전시수도 충칭에서 항일전쟁 승리를 선포하고 방송국을 나서는 장제스(가운데). 김명호 제공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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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격전 귀재 덩톄메이, 동북 곳곳서 日軍에 치명타
선양으로 압송되는 덩톄메이. 1934년 6월 4일 밤, 펑청역 플랫폼. [사진 김명호] 1993년 봄, 중국은 민정법(民政法)을 개정했다. 도로나 마을 명칭에 인명 사용을 금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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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왕 “만주사변은 자위전쟁” 강변… 미·영 강력 반발
"중앙선데이,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" 제국 일본에는 교육칙어(敎育勅語)와 군인칙어(軍人勅語)의 두 칙어가 있었다. 1890년 일왕 메이지(明治)가 반포한 교육칙어는 “짐은 우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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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事思史] 근대를 말하다 : 요약 18
일제의 항복 소식에 식민지 한국의 일반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독립운동가들, 특히 해외 인사들의 반응은 달랐다. 대한민국 임시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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절반만 바뀐 역사, 미·소 군정으로 외세 위력 여전
광복군. 김구(가운데) 선생의 왼쪽이 지청천, 김학규, 오른쪽이 차리석, 한 사람 건너 이시영 등이다. 광복군은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려 했으나 일본의 조기 항복으로 작전이 무산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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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분수대] 만주 웨스턴
서부극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. 1903년 에드윈 포터의 ‘대열차 강도’가 시초다. 60~70년 대에는 ‘스파게티 웨스턴’이라 불리는 이탈리아산 서부극이 등장했다. 미국식 개척정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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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666) 제79화 육사졸업생들(119)-김창룡소위
김창룡소위가 제1연대에서 정보소대를 운영하면서 한참 군내사찰활동을 펴고 있을 때 송호성 경비대사령관이 법무처장 김완룡대위를 불렀다. 김창룡을 조사하여 파면시키도록 하라는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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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3)날조된 가계
어용학자들은 김일성의 경력을 서술할 때 사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쓴다. 실제 있었던 사실보다도 쓰인 사실이 더 중요하고 뜻이 있다는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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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9)그 입지의 현장을 가다|반공포로출신 재인 실업인 지기철씨(2)
【뉴델리=김동수 특파원】8·15 뒤 한 달이 채 못돼 한인 귀국 선을 가까스로 얻어 탈 수 있었던 지씨는 9월13일 생소하기만 한 부산 땅을 밟는다. 패전 뒤 흐지부지 풍지박산 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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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무표·고 임동춘 중위 태극무공 훈장을 수여
국무회의는 28일 월남 중부 「안케」협로 개통작전에서 638고지를 탈환하는데 수훈을 세운 이무표 중위(26·맹호 기갑 연대 4중대 3소대장)와 고 임동춘 중위(23·맹호 기갑 연대